연휴 한가운데에 서서

자정을 넘긴지 이제 한 시간. 설날이 지난지 이제 한 시간. 음력 1월 2일.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꿈만 같다. 그냥, 그냥 아련히 떠오를 뿐이다.


집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오늘이 처음도 아닌데···. 집을 떠나 밖에서 생활한지 올해로 10년 째. 이제는 적응이 될 때도 지났을텐데 그것 때문이려나? 그건 아니겠지···.

설 연휴 3일. 그 한가운데에서, 바로 설날에 난 집을 나섰다. 부모님 얼굴을 조금 더 뵙지 못한 게 너무나도 죄스럽고 동생들과 우스갯소리 한 마디 더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오전 오후 내내 잠만 자다 벌떡 일어나서는 집을 나서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그런 날이다. 오늘은···.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일까, 아니면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무거웠던 것일까···. 지하철을 오르는데, 자꾸만 내일 아침에 떠나면 되지 않냐며 나를 붙잡던 막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연휴 전날, 조금만 더 일찍 오면 안 되냐며 나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항상 통화가 끝날 때면 "큰 아들, 사랑해~"하며 웃으시는 어머니가 떠오른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둘째가 떠오른다. 이 모든 것들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이내 현실이 내 멱살을 쥐어 잡는다. 그래···. 가야지···.

열차 안. KTX 실내에 비치된 텔레비전이 얼굴 동그란 CRT에서 날씬하고 매끈한 LCD로 바뀌었다. "시험 운행중"이라며 이름표를 달고 나온 걸로 봐선 모든 열차에 구비된 건 아닌가 보다. 새로 바뀐 화면을 보고 있으니 한결 기분이 편안해진다. 참, 나도 정말 단순하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내가 보던 잡지를 가리키며 잠시 빌려 봐도 되냐며 묻는다. 이런 기분엔 흔쾌히 오케이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올랐다. 쌀쌀한 날씨, 한참을 기다려 오른 버스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유쾌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내 역한 날씨에 속이 더부룩해진다. 게다가 버스 운전수. 운전을 참 험하게도 한다. 뒷자리에 앉은 내게는 참으로 곤욕이다. 커브를 돌아 나가는 순간 순간마다 헛구역질이 난다. 얼마나 그랬을까? 멀리 학교가 보인다. 불이 꺼진 건물들···. 간간이 불이 켜진 창문을 바라보면 어찌나 반갑던지···. 마치, 저 방 안에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이 들어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연구실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 이미 하루 이상 주인을 잃어버렸던 공간에는 정적과 차가운 냉기만이 감돌 뿐이다. 아무도 없는 연구실을 혼자 거닐어 본다. 그리고 의자에 앉는다. 차갑다. 책상···. 팔꿈치를 닿기조차 두려울 정도로 싸늘하다. 갑작스레 어지러워진다. 이 모든 순간이 어지럽다. 그리고 피곤하다. 피곤하다, 피곤하다···.


이 모든 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은 하루, 기쁘고 슬프고 행복했고 또 괴로웠던 하루가 흘러간다. 2005년 설날, 그 한가운데에서···.

by EXIFEEDI | 2005/02/10 01:01 | 발자국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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